『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미국사』 옮긴이 후기

제이 호슬러의 『작은 딱정벌레의 위대한 탐험』(개정판 제목은 『어메이징 샌드워커』)으로 궁리와 첫 인연을 맺은 뒤로 맷 업슨·C. 마이클 홀·케빈 캐넌의 『어메이징 인포메이션』에 이어 이번에는 래리 고닉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미국사』를 번역했다. 세 권 모두 만화책이다. 2015년 6월 24일 궁리의 변효현 편집자에게 처음 이메일을 받았는데, 50여 권을 번역했지만 만화책은 처음이어서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나의 번역 성향이 만화와 맞을지,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언어유희들을 한국어로 적절하게 번역할 수 있을지, 작업 시간이 더 걸리지 않을지, (가장 중요하게는) 기존 단행본처럼 글자 수 기준으로 번역료를 받아도 손해가 아닐지 등등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보다 먼저 제이 호슬러를 번역한 김명남 씨에게 이메일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샘플 원고를 검토한 뒤에 작업을 수락했다.

만화를 번역할 때 가장 까다로운 부분은 원문과 번역문의 위치를 맞추는 것이다. 기존 단행본은 원문의 페이지를 신경 쓰지 않고 챕터별로 번역하면 그만이지만 만화는 영어 말풍선과 한국어 말풍선이 전부 맞아떨어져야 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각 페이지마다 원서의 말풍선에 번호를 매기고 번역문에서도 번호를 붙였다. 나중에 그래픽 노블 전문 번역가 임태현 씨에게 물어보니 다들 이 방식으로 작업하는 듯하여 안심할 수 있었다.

번역문이 원문과 똑같은 공간 안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글자 수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원문에서 당연하게 전제하는 것을 번역문에서는 명시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번역문은 원문보다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원문을 있는 그대로 풀어 쓴다기보다는 원문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번역문을 창작해야 할 때도 있다. 특히 언어적·문화적 차이 때문에 그대로 번역해서는 독자들이 이해하거나 웃음을 터뜨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적당한 한국어 표현을 찾느라 골머리를 많이 썩여야 했다.

이번에 출간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미국사』도 번역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 방대한 미국사를 405쪽으로 압축하느라 비유와 생략을 많이 구사한 탓에 원문을 이해하는 것조차 힘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 저자와 50차례 가까이 메일을 주고받으며 의문을 해결해야 했다. 이를테면 130쪽 두 번째 칸에서 인디언과 개척민 사이에 있는 물건들에 쓰인 이름 중에서 맨 위의 ‘물물교환’은 원서에서는 ‘TRADER TIM’이었다. 이것이 회사 이름인지, 역사적 의미가 있는 개인을 가리키는지 알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봤지만 도무지 찾을 수 없어서 저자에게 문의했다. 그랬더니 그냥 아무 이름이나 지어낸 거라고 했다. 무엇으로 해도 상관없다고. 그런데 한국어로 ‘트레이더 팀’이나 ‘무역상 팀’이라고 하면 한국 독자는 나처럼 이 이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증을 품을 것이다. 그러면 괜한 고민을 하느라 귀한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이므로, 인디언과 개척민의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인 ‘물물교환’으로 번역하여 독자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사소한 단어 하나가 등장할 때마다 검색과 문의를 하느라 시간을 적잖이 써야 했는데, 번역자는 비록 애를 먹었지만 독자가 그만큼 수월하게 읽어준다면 고생한 보람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번역자에게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미국인이 쓴 책들을 주로 번역하면서도 정작 미국사를 체계적으로 살펴본 적은 없었는데, 이 책 덕분에 아메리카 대륙에 사람이 첫발을 내디딘 때부터 이라크 전쟁까지 미국의 요모조모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번역자로서뿐 아니라 독자로서도 즐겁고 유익하게 작업한 책이라고나 할까. 이 책을 통해서 독자 여러분도 복잡다단한 미국사를 쉽고 재미있게 일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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