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발상이 이렇게 흥미진진한 결과를 낳을 줄 누가 알았을까! 진화를 지구상의 생명체가 이룬 위대한 업적으로 찬미하는 책은 차고 넘치지만 진화가 우리에게 남긴 오류와 결함을 이렇게 집요하게 파고든 책은 처음 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온갖 결함이 우리의 위대함을 입증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 모든 결함 때문에 인간이다.
또한 진화 과정의 오류는 우리가 신의 섭리에 따라 창조된 존재가 아님을 보여준다. 실제로 지적 설계론을 내세우는 단체에서 저자와 이 책을 여러 차례 비판한 적이 있는데, 이는 이 책이 지적 설계론과 창조론을 효과적으로 반박했다는 반증이다. (저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지적 설계론 진영의 비판에 대한 저자의 재반박을 읽을 수 있다.)
인간은 신의 형상을 닮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나아진, 어쩌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결과물이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이다. 어떤 결함들은 다른 어떤 이로움을 얻기 위해 치른 대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장점뿐 아니라 결점까지 사랑하는 것이듯 우리는 지금의 결점투성이 모습을 달갑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물론 유전자 편집 기술이 새로 등장하면서 인류는 무작위 돌연변이에 의한 점진적 진화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단을 손에 넣었다. 과연 우리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이익만 챙길 수 있을까? 저자가 후기에서 말하듯 인류가 막강한 힘을 손에 넣은 지금 인류의 종말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 과학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낙관하지만, 인류의 생존은 거저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너무 늦지 않게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
이 책은 까치글방과 작업한 첫 책이다. 처음 원서를 받았을 때는 딱딱한 정통 과학책인 줄 알았는데 번역을 시작하면서 저자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유머 감각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번역자에게 재미있고 유익했던 이 책이 여러분에게도 재미있고 유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