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24일 피터 싱어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저의 최근작 소식을 알립니다.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일인 5월 5일을 기념하여 『마르크스』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4월 1일에 출간됩니다.
좋아하는 철학자인 피터 싱어가 궁금한 사상가인 카를 마르크스에 대한 책을 썼고 게다가 변화한 시대 상황에 맞게 개정했다는 소식에 구미가 당겼다. 그래서 트위터에 “옥스퍼드 VSI 마르크스 편을 피터 싱어가 썼구나.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개정판이 나왔다고. 교유서가에서 내주면 좋겠다.”라고 글을 올렸는데 이튿날 교유서가 신정민 대표에게서 “판권을 구하면 선생님께서 번역하실 의향은 있으신지요?”라는 답장을 받았다. 피터 싱어는 『헤겔』도 썼는데, 『마르크스』를 읽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참에 함께 번역하기로 계약했다. 『마르크스』 참고문헌에서 “헤겔의 사상에 친숙해지면 마르크스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Peter Singer, Hegel: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Oxford Press University, 2001)도 맘에 들 것이다”라고 밝힌 것을 보면 둘 다 번역하길 잘한 것 같다. 사실 두 책의 번역은 사심에서 출발했다. 늘 ‘언젠가는 읽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마르크스』와 『헤겔』을 번역 핑계로 꼼꼼히 들여다보고 싶은 욕심이 컸다. 번역은 책을 가장 꼼꼼히 읽는 방법이기도 하니까. 물론 남이 번역해놓은 책을 읽는 것이 훨씬 편하지만.
마르크스는 경제학자 이전에 철학자다. 그의 철학이 헤겔의 변증법적 관념론을 어떻게 뒤집어 변증법적 유물론을 만들어냈는지 들여다보려면 철학자의 관점이 필요한데, 피터 싱어는 이 일에 적임자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여느 마르크스 소개서와 달리 철학자 피터 싱어와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의 대담처럼 읽힌다. 피터 싱어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발전하는 궤적을 따라가며 마르크스 사상의 전모를 밝힌 뒤에 그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든다. 생산력과 상부구조의 관계에서 생산력을 우위에 놓은 이른바 경제 결정론을 헤겔주의의 관점에서 규명한 것은 개인적으로 이 책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이 밖에도 마르크스의 자유 관념을 자유주의적 자유 관념과 대조하고 마르크스와 피케티를 비교하는 장면 등이 이채롭다.
이 책의 일종의 대담이라고 말했는데, 마침 피터 싱어가 영국의 철학자 브라이언 매기와 이 책에 대해 대담을 나눈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기에 자막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마르크스와 헤겔의 사상을 간단명료하게 요약하고 있으니 예습 삼아 봐두시길 권한다(주소: http://socoop.net/Marx/interview/).
『마르크스』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비롯한 여러 저술가들의 글이 인용되고 있는데, 한국어판이 출간된 경우 번역문을 그대로 옮겨 싣고 출처를 명기했다. 편집 방침에 따라서는 한국어판 인용문의 문장을 다듬기도 하는데, 이 책은 마르크스의 저작으로 이어지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독자가 대조하며 읽을 수 있도록 고유명사 등 일부 표기를 제외하고는 전혀 손대지 않았다. 다행히 마르크스의 주저와 선집이 출간되어 있어서 번역에 큰 도움을 받았다. 해당 저작들을 출간한 번역자와 출판사의 노고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