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지구를 정복하지 않았으면 지구의 주인은 딱정벌레였을지도 모른다. 종 다양성이 성공의 잣대라면 딱정벌레는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목 중 하나다. 지구상의 모든 동물 종 중에서 약 30퍼센트가 곤충인데 그중 40퍼센트가량이 딱정벌레다. 알려진 종만 해도 25만 종이 넘는다. 딱정벌레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앞날개가 딱딱하게 변한 딱지날개(시초)로, 연약한 날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 덕에 딱정벌레는 육해공 어디에서나 적응하여 살 수 있게 되었다.
딱정벌레의 눈으로 본 세상은 딱정벌레와 딱정벌레 아닌 것으로 나뉠 것이다. 딱정벌레에게 지능이 있다면 세상에는 왜 이렇게 딱정벌레가 많은지 궁금해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자신들이 신에게 선택받은 생물이라고 생각하려나?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사막 한가운데(어쩌면 초등학교 운동장 구석일 수도 있다)에 있는 작은 오아시스에 사는 딱정벌레들이라면 바깥세상이 궁금할 법도 하다.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자기네에게 유리한 지배층 딱정벌레라면 이런 불경한 호기심을 억누르고 싶어 할 테지만.
이 책은 딱정벌레의 생태와 과학적 사실들에 대한 책이기도 하지만, 종교와 기득권층의 억압에 저항하는 숭고한 인간 정신의 승리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동물을 의인화하는 책은 동물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해줄 뿐 아니라 우리 자신 또한 객관적으로 보게 해준다. 우리가 딱정벌레의 말을 못 알아들어서 그렇지 정말로 바깥세상을 탐험하는 딱정벌레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물이 새로운 서식처를 개척하여 적응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탐험이니 말이다. 모든 생태적 틈새는 그렇게 메워진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능을 가지게 된 것이 필연적 사건이 아니라면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동물인 딱정벌레가 지능을 가지지 못하란 법도 없으리라.
이 책은 만화이지만 정확한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삼고 종교와 과학의 대립이라는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가족관계의 변화라는 막장 드라마적 요소가 들어 있는데다 대중문화에 대한 오마주까지 담겨 있어서 아이 혼자 읽도록 내버려두기에는 아깝다. 부모가 함께 읽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길 권한다. 나도 한국어판이 출간되면 큰애와 함께 읽어볼 생각이다.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또한 여러분이 과학의 즐거움에 한발 더 가까워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