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유서가에서 이 책의 번역을 의뢰받았을 때는 흔한 과학 입문서인 줄 알았다. 게다가 학문의 각 분야를 쉽게 여며준다는 첫단추 시리즈 아닌가. 그런데 막상 번역을 시작하려고 들여다보니 처음 보는 용어에다 멸종 동물의 학명이 난무하는 게 아닌가! 얼마 전 동료 번역가 김명남 씨와 얘기를 나누다 내가 이 책을 번역했다고 말하니 옥스퍼드 VSI(Very Short Introduction. 이 책의 모태가 된 원서의 시리즈) 중에서도 독특한 책이어서 번역될 줄 몰랐다며 캐스린 슐츠Kathryn Schulz의 《뉴요커》 기사를 알려주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 책들[옥스퍼드 VSI] 중에는 현대 인도나 셰익스피어 비극처럼 나중에 자세히 탐구할 수 있도록 해당 주제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이빨』처럼 평균적 일반인이 알고 싶어 하는, 또는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담은 것도 있다.
Some of these books are concise introductions to topics you might later wish to pursue in greater depth: Modern India, say, or Shakespeare’s Tragedies. Others, like “Teeth,” contain pretty much everything the average layperson would ever want or need to know.
(출처: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17/10/16/how-to-be-a-know-it-all)
한마디로 『이빨』은 일반 독자에게는 이빨에 관한 첫단추이자 끝단추라고 할 만하다. 특히 이빨의 진화사는 수의사와 치과의사에게도 생소한 분야일 것이다. 독자층이 좁기로 따지면 내가 번역한 존 롱, 『다윈의 물고기』(플루토, 2017)와 마크 챈기지, 『자연모방』(에이도스, 2013)에 비길 만하다. 하지만 200쪽짜리 이 책 한 권만 읽으면 이빨에 대하여 여러분이 “알고 싶어 하는, 또는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이빨의 해부학적 구조, 기능, 포유류 이외의 동물과 화석 동물의 이빨, 이빨의 진화, 포유류의 이빨, 인간의 이빨에 이르기까지 이빨의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다. 우리도 상어처럼 평생에 걸쳐 이빨이 나면 충치가 나도 걱정 없을 텐데, 왜 이갈이를 한 번만 하게 되었을까? 궁금하다면 117쪽을 펼쳐보시길. 왜 인간은 침팬지와 달리 남녀의 이빨 차이가 적으며 송곳니가 날이 서 있지 않고 짧다. 그 이유는 이 책 170쪽에 나와 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낯선 용어들의 번역어를 찾기 위해 의학사전, 치의학사전은 물론이고 논문까지 참고해야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치과학 분야가 원래 그렇다. “이빨 연구의 대가 퍼시 버틀러Percy Butler는 이렇게 개탄했다. ‘비교치형태학comparative tooth morphology을 공부하려면 우선 복잡한 명칭의 난관을 이겨내야 한다. 이 때문에 이 학문이 실제보다 훨씬 난해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용어에 담긴 논리를 이해하면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다.”(24쪽) 번역자로서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도 이와 같다. 생소한 한자어들에 지레 겁먹지 말고 찬찬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이빨이 훨씬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마틴 브레이저, 『다윈의 잃어버린 세계』(반니, 2014)에서는 진화론의 수수께끼이자 생물군이 극적으로 증가한 현상을 일컫는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이빨의 출현과 연관 짓는데 이 책의 생태적 관점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빨이 진화하지 않았다면 포유류는 존재할 수 없었다. 리처드 랭엄, 『요리 본능』(사이언스북스, 2011)도 참고할 만하다. 『이빨』 7장에서는 인간의 이빨이 온갖 질환에 시달리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요리가 인류 진화의 결정적 계기였다는 랭엄의 주장이 옳다면 요리는 인류에게는 축복이었지만 인류의 이빨에는 저주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여러분은 이빨만 보고도 상대방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미세마모’와 동위원소 비율을 관찰하고 측정할 수만 있다면. 적어도 충치나 부정교합으로 고생하는 친구에게 그건 네 탓이 아니라고, 인류 진화의 불가피한 부산물이라고 위로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방금 역자 교정을 하면서 ‘이빨 여행’이라는 오타를 ‘이빨 유형’으로 고쳤는데, 여러분은 이 책과 함께 신나는 이빨 여행을 떠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