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물리학』 옮긴이 후기

이 책은 스물아홉 가지 방정식으로 원자부터 개체군에 이르기까지 모든 척도의 생명 현상을 설명한다. 이 방정식을 이용하면 우리는 개미집의 크기로부터 어떻게 개미 마릿수를 추정하는지, 무당벌레가 어떻게 수직의 벽에 붙어 있을 수 있는지, 두더지는 왜 몸이 펑퍼짐하고 다리가 굵은지 등을 알 수 있다. 생물에 대해 여러분이 궁금해하는 것들 중에는 물리학 원리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꽤 많다. 이를테면 코끼리만 한 개미나 딱정벌레가 없는 이유는 91쪽의 피크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왜 바퀴 달린 동물이 존재할 수 없는지 궁금하다면 112쪽을 읽어보라. 물고기에게 프로펠러가 진화하지 않은 이유는 116쪽에서 탐구한다. 세포가 왜 생겨났는지는 146쪽에서 다룬다.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생명 현상을 무미건조한 방정식으로 환원한다는 발상이 꺼림칙하다면 이 문장을 생각해보라. 「생명체는 물질의 일종이며 따라서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젠 너무 당연해서 동어 반복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개념이 옳다면 앞의 개념도 옳을 수밖에 없다. 방정식이란 법칙을 일목요연하게 나타낸 것에 불과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트집을 잡을지도 모르겠다. 뻔한 얘기를 괜히 논쟁적으로 포장한 것 아니냐고. 그런 사람들에겐 이 질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싶다. 「지구 밖에도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 생명체는 지구 생명체와 닮았을까?」

금성 표면을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뜨거운 표면에 닿을 때마다 〈아우치!〉 하고 비명을 지르는 아우처파우처, 커다란 털북숭이 귀로 화성의 추운 밤과 겨울에 몸을 감싸는 워터시커, 명왕성의 지성체 얼음덩어리 지슬, 궁둥이에서 가스를 분출하여 날아가는 타이탄의 스토브벨리. 1986년 로이 갤런트가 쓴 『우리 우주의 지도』라는 책에 등장하는 우리 태양계의 상상 속 생명체들이다(이 책 35~36쪽 참고). 과학 저술가 갤런트는 SF적 상상력을 한껏 발휘했다. 터무니없는 공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서 우리는 생명에 대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생명이 환경의 산물이며 따라서 물리적 조건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물리학과 생물학의 통합은 어떤 사람에게는 당연한 소리로 들릴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내가 이 책을 번역하면서 줄곧 고민하던 문제도 이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이 책이 당연한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여 책을 안 읽고 어떤 사람은 이 책이 견강부회라고 생각하여 책을 안 읽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생명의 조건과 한계, 외계 생명체의 가능성, 물리학과 생물학에서 우연성이 작용하는 방식 등을 읽어 나가면서 이 책이 단순히 물리학과 생물학을 붙여 놓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종합의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질문은 지구 밖에 생명체가 존재하는지, 그 생명체가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진화했는지 고민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로 바뀐다.

이 책에 나오는 문장 몇 개를 일별하면 책의 성격과 저자의 취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는 (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 서로 다른 원리들을 조합하여 유기체를 만들어내는 매우 근사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생물은 다양한 물리 법칙을 담는 용기(容器)인 셈이다.」 「물리 법칙은 생명이 조합되는 모든 수준에서 특정한 해결책을 향해 생명의 방향을 제한한다.」 「수렴 진화의 본질은 생물학적 형태를 물리적 원리에 의해 결정되는 비슷한 결과물로 빚어내는 것이다.」 「여러분과 침팬지의 차이는 두 DNA 부호의 4퍼센트 차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머지 96퍼센트를 어떻게 읽는가도 차이를 만들어낸다.」 「샌드위치라는 허울을 쓴 이 음식은 실은 전자를 소비하는 간편한 방법에 불과하다.」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가물에 콩 나듯 박혀 있는 유머다. 과학자의 유머는 귀하다. 희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책에 유머를 곁들이는 것이 효과적인 이유는 분명하다. 사막의 오아시스라고나 할까. 85쪽 밑에서 여섯 째줄 같은 유머를 찾아내는 것 또한 이 책의 흥밋거리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의 번역을 끝내고 심심풀이로 넷플릭스에 들어갔더니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나를 반긴다. 그중에서 『에일리언 월드』라는 제목이 눈에 띄기에 ‘설마 우주생물학 관련 다큐멘터리인가?’ 하며 클릭한다. 그런데 〈어라, 이 책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건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로 통하는 게 많다. 여러분도 책을 읽고 나서 다큐멘터리를 보면 더 흥미진진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1화 〈아틀라스〉에서 외계 행성을 찾아낸 방법(통과 측광법)과 중력이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은 이 책 11장 〈보편 생물학이 가능할까?〉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2화 〈야누스〉에서는 생명이 서식할 수 있는 한계(온도, 물)를 탐구하는데, 극한 생물과 더 많은 환경적 제약 요인에 대해서는 이 책 6장 〈생명의 가장자리〉를 보면 된다. 3화 〈에덴〉의 공생은 5장 〈생명의 꾸러미〉에서 다세포성의 진화를 참고할 만하다. 4화 〈테라〉에서는 우주 비행사 마이클 폴이 잦은 우주 비행으로 방사능이 몸에 누적되었다고 말하는데, 이 또한 6장 〈생명의 가장자리〉에서 중요하게 다룬다.

상상 속 외계 생명체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이것 말고도 몇 가지가 있다(2005년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우주 행성Alien Planet』 한국어판을 방영한 적도 있다). 다양한 천체와 그곳에 거주하는 생명체를 묘사한 픽션으로는 드라마 『스타 트렉』, 존 스칼지의 소설 『노인의 전쟁』이 맨 먼저 떠오른다. 여러분은 이제 생명의 진화를 제약하는 물리학 원리에 대해 배웠으니 저 픽션들이 고증을 제대로 했는지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SF 작가라면 생명체를 탄생시킬 때 골머리 썩일 일이 하나 늘어났을 테고.

여담을 하나 하자면, 이 책의 영어판 원제는 〈The Equations of Life〉, 즉 〈생명의 방정식〉이다. 아마도 한국어판 출판사에서는 이 책이 생명 현상을 물리학으로 설명하고 있음에 착안하여 한국어판 제목에 〈방정식〉이 아니라 〈물리학〉을 넣은 듯하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번역하기 다섯 달 전에 에이드리언 베잔의 『The Physics of Life』, 즉 (진짜) 〈생명의 물리학〉을 번역했다. 하지만 베잔 책의 한국어판 출간이 늦어지는 사이에 코켈의 책이 먼저 나오고 말았다. 나중에 나오는 책은 제목을 뭐라고 지으려나? 내가 중간에서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지 잠깐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내 〈에라, 모르겠다! 두 출판사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심정으로 포기해버렸다. 호부호형을 하지 못하게 된, 또한 골머리 깨나 썩일 베잔 책 출판사의 편집자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

그나저나 지표면이 매끈한 외계 행성에는 바퀴 달린 짐승이 포뮬러1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경주를 〈맨발로!〉 벌이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