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진행자이자 인터뷰 진행자로 이름난 스터즈 터클의 『Working』은 번역자에게 행운이자 고역이다. 영어 화자의 입말을 옮길 수 있는 기회란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 책은 6~70년대 미국 사회 구석구석에서 살아가는 133명의 생생한 목소리를 그대로 전하고 있다. 땅에서 일하는 농부, 광부에서 사람을 다루는 전화 교환원, 매춘부, 광고 업계에 종사하는 여러 사람들, 청소부, 경찰, 자동차 산업 노동자, 직업운동가, 부동산중개인, 요트중개인, 운동선수, 무덤 파는 인부, 신부를 비롯하여 띄엄띄엄 살펴보아도 한 시대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할 만한 직업의 향연이 펼쳐진다. 다양한 것은 직업만이 아니다. 직업을 대하는 태도 또한 각양각색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기도 하고 벗어나기만을 고대하기도 하고 직업을 통해 꿈을 이루기도 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직업을 유지하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가 만나는 것은 단순히 133개의 직업이 아니라 133명의 인생역정인 것이다. 고백컨대 내 머리는 133명의 인생이 거쳐갈 만큼 넉넉하지 못하다. 모름지기 번역이란 작가와 동화되는 게 우선인데 133번 정체성을 바꿔야 했으니 번역 기간 내내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이고 있다. 첫째, 직업 소개서의 역할을 한다.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수많은 사이트에서 직업 또는 사업 분야를 설명하면서 이 책을 인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단면(斷面)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6~70년대의 한 시점에서 전반적인 사회상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둘째, 사회를 분석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한다. 가령 마샬 버먼의 <맑스주의의 향연>에서는
이 책에는 '일'뿐 아니라 '삶'의 갖가지 측면이 등장한다. 인종 갈등과 성차별, 관료주의와 위선, 보람과 권태, '일'은 곧 '삶'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는 과도기였다. 소명으로서의 직업이 아니라 내키지 않는 일,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은 일로서의 직업관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IMF 지배를 거치면서 익히 경험한 바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일이란 여전히 자신의 전부인 것이다. 근속연수 30년을 채우고 퇴직할 날만 기다리는 노동자도 있고 자신에게 펼쳐질 미래를 꿈꾸는 신문배달 소년도 있다. 나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독자들께서 134번째 등장인물이 되어 스스로 대답해보시길.
처음 이 책을 받아 들고는 분량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난다. 589쪽에 깨알같은 글씨, 삽화도 여백도 없이 딱딱할 것만 같은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일단 책장을 넘기자 아주 수월하게 읽혔다. 아니, 들렸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눈에 들어온 활자가 다시 귀를 거쳐 머리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독자들께서도 터클의 옆에 앉아 구술자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을 느껴보기 바란다. 어찌 보면 이 책의 분량도 이해는 간다. 6~70년대 미국 사회가 통째로 들어있으니 말이다.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솔직함이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도 하고 내면의 분노를 쏟아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를 보여주는 창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리라.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 표현에서도 시대가 읽힌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이 책은 미시사·생활사 측면에서 미국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텍스트가 될 것이다. 첫 장의 제목처럼 '누가 피라미드를 건설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말이다.
이 책은 스터즈 터클의 네 번째 저서이자 가장 잘 알려진 책이다. 출간 후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동명의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제작되기도 했다.